西尾美也  Yoshinari Nishio

photo by Chihiro Matsushita

- 패션과 커뮤니케이션을 고민하다.

LEE : 안녕하세요. 직접 만나뵙게 되어 굉장히 기쁩니다.  
YOSHINARI :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LEE : 초창기 작업부터 최근 프로젝트까지 천천히 말해보고 싶습니다. 패션을 작업에 도입하게 된 시기를 알고 싶습니다.
YOSHINARI : 아버지가 공예를 좋아하셨어요. 어렸을 때도 장난감은 아버지가 만들어 준 것이 많았죠. 파는 것보다 더 멋진 장난감을 받고 기뻐했던 기억이 많습니다. 학창시절부터 패션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기발한 복장으로 주위 사람을 놀래키고는 했습니다. 모친에게 재봉틀을 배워서 스스로 옷을 제작하기도 했구요. 고교생이 되면서 본격적인 패션의 길을 선택했어요. 이른바 패션 디자이너가 아니라 옷을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활용하는 활동은 없을까 고민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대학에서도 미술보다 패션에 강한 흥미를 가지고 있었죠. 특히, 카와쿠보 레이의 컬렉션은 매번 놀라움을 줍니다. 학창 시절 대학 교수이기도 한 카와마타 타다시, 히비노 카츠히코의 활동에 영향을 받으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 같아요.

LEE : 패션 분야의 영향으로 실제로 브랜드 < FORM ON WORDS >와 < NISHINARI YOSHIO >을 설립하게 되었다. 패션 산업은 현대 미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

YOSHINARI : 현대 미술에서도 관심을 갖었던 것은 ‘아트 프로젝트’의 방법론이었어요. 프로젝트는 과정을 중시하거나 타인과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며 생산자와 수신자의 관계를 조망하는 특징이 있어요. 프로젝트 방법론을 패션에 대입한 시도가 < FORM ON WORDS >와 < NISHINARI YOSHIO >입니다. 저는 패션을 ‘입는다=사회적 신체’로 전 인류의 공통된 행위로 다루고 있어요. 누구나 패션의 참가자이자, 실천자입니다. 대기업이나 디자이너가 제안하는 옷을 소비하는 입장 뿐만 아니라, 옷 차림의 참가자가 능동적으로 옷을 만드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어요. 옷은 누구에게나 신체에 가장 가까운 "작품”이며 일상을 자신이 창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죠. 한국의 아티스트 최정화씨는 "생활이야말로 아트이며, 누구나 아티스트이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말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저는 이 주장을 옷으로 실천하고 싶었어요.

photo by Kenta Hasegawa

- 패션과 커뮤니케이션을 고민하다.

LEE : 2007년부터는 전세계를 여행하며  < Self Select >작업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YOSHINARI : 당시 파리에서 체류할 기회가 생겨, 미리 여행 겸 시찰을 갔습니다. 거리를 걷다 현지사람에게 프랑스어로 말을 건네야 할 경우가 많았어요. 일본은 외모가 다른 사람에게 일본어를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외모가 다른 것은 다른 언어로 이야기를 건네야 하는 이유가 되지 못했죠. 이민자들의 공통어는 프랑스어지만, 복장으로 종교나 아이덴티티를 주장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새로운 언어를 익히기 어렵지만, 반대로 복장은 받아들이기 수월하잖아요. 제 나름대로 파리라는 장소를 체험하기 위한 방식이었습니다. 길을 지나는 사람에게 옷을 교환하는 아이디어를 ‘교섭’이란 아이디로 연결했어요. 나이로비나 코토누, 오클랜드에서도 시도하면서 라이브워크로서 작품이 되고 있습니다. 되도록 눈으로 본 것을 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타인과 마주하는 방식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LEE : 익숙하지 않은 지역에서 관계없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YOSHINARI : 일단, 길을 가는 사람에게 말은 걸 때, 짧은 현지 언어로 교섭을 시도합니다. 유창하지 않은 언어를 들으려는 상대의 배려가 교섭의 계기가 될 수 있어요. 물론, 바빠서 바로 거절하는 사람이 많고,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라 거절하기도 하죠. 일단, 흥미를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환복은 도로에서 진행됩니다. 주변 사람들도 흥미를 갖고 감상하기 때문에, 그 길목이 순간 연극 공간 같은 곳이 되어 버려요. 


LEE : 작년에는 < Migrants in Tokyo >란 이름의 전시로 오랜만에 Self Select를 발표하였습니다.
YOSHINARI : 
처음 작업을 시작하여 10년이 지나 2017년만에 실시하였어요. Self Select은 간단한 아이디어라 언제나 "재연"이 가능한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즉, 누구라도 진행할 수 있는 일이며 작품을 이해하거나 감상하는 방법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지 생각하고 있어요. 또 일본에서 이 프로젝트를 실시하면 의사가 잘 통하여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했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해줄 이민자 4명의 협력을 통해, Self Select를 대신 실시해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LEE : 옷에 대한 관심은 2011년에 < 1000 Coordinates >에서 헌 옷 작업으로 이어갑니다. 요시나리씨에게 옷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YOSHINARI : 
사람이 평생 착용하는 옷을 평균치로 산출하여 4000벌의 옷을 수집하였습니다. 모인 헌 옷을 시민들이 자유롭게 조합하여 1000가지 코디를 완성시켰고, 동시에 하나하나 분석 시트에 기술했습니다. 조화된 의복은 모두 착용하여 정면, 후면, 두 측면의 4컷을 촬영하여 착탈식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어요. 이 1000장의 분석 시트와 영상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이었죠. 촬영을 마친 옷은 시민들의 손에 의해 해체되었어요. 시민들로부터 기부 받은 4000벌의 헌 옷은 기억을 가진 소재입니다. 패션은 시각을 중시하는 매체지만, 옷의 외형뿐만이 아니라, 헌 옷이 갖는 기억과 스토리의 힘을 빌려 작품화하였죠. 또 헌 옷은 누군가의 껍데기란 말도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헌 옷=인간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감각이 있어요.

photo by Yasuyoshi Chiba

- 니시오 공작소, 아프리카에 머물다.

LEE : 특별한 경험이 있으십니다. 문화제청 신진 예술가 해외 연수 제도로 케냐 나이로비에서 2년간 파견 연수원 활동을 하셨네요. 어떤 연구를 진행했나요?
YOSHINARI : 
당시 아내가 아프리카 지역 연구를 전문으로 진행하고 있었고, 어린 아들을 데리고 나이로비로 떠났습니다. 치안이 좋지 않아, 현지에 케냐인과 팀을 조직하고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어요. 우선, 나이로비에의 생활을 제대로 실천 하는 것부터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켰어요. 시장에서 옷 매매 방식이나 세탁, 물건의 운반 방법 등에서 영감을 얻어 현지인들과 협동을 통한 프로젝트를 전개했어요. 그들의 삶은 크리에이티브하며 서구의 미술세계 이상으로 저에게는 끌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트 프로젝트의 방법론을 탐구하기에 평소 아트와 관계 없는 사람들과의 유대가 굉장히 중요해집니다. 지금까지 무관하다고 여기며 멀리한 존재의 사람들과 어떻게 협동할 수 있는지는 하나의 테마가 큰 주제가 되었습니다. 때문에, 서구가 아닌 아프리카를 선택하여 아트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한 매니지먼트를 진행하였습니다.

LEE : 니시오 공작소 나이로비와 아라카와 아프리카 실행위원회
YOSHINARI  : 
나이로비에서 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아내가 당시 대학원생이고, 케냐를 조사지로 지역 연구하고 있던 것이었죠. 아프리카는 제 자신과 별로 관계가 없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일에 흥미도 있었고, 타자와의 협동을 테마로했기 때문에 아프리카라는 장소에서 아트 프로젝트의 실천론이 성립될지 시도해보고 싶었습니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아프리카에 머물 수 없기에 일본에서 "아라카와·아프리카”라는 플랫폼을 개설했어요. 당시 거주했던 도쿄 아라카와의 근처에 생겼던 갤러리가 계기가 되었던 것아요. 갤러리는 기획전이나 공간 렌탈도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지역과 밀접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구상하게 되었어요. 나이로비와의 인연이 있었을 시기였기 때문에, 아프리카를 테마로 기획을 진행하기로 했죠. 아라카와에서 아프리카와 관계있는 사람이나 물건을 탐색하자 의외로 연결된 일이 많더라고요. 처음에는 이런 아라카와 안의 아프리카를 탐구하여 전시의 형식으로 소개하는 일을 진행했지만, 회를 거듭하여 더 자유로운 상상적, 창조적인 양자를 연결할 수 있는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LEE : 나이로비 생활은 굉장히 고되었을 것 같아요.
YOSHINARI : 
제가 살던 나이로비는 거의 적도의 직하였지만, 표고가 1600m로 꽤 높은편이었고 연중 온화한 날씨였어요. 일본과는 전혀 다른 삶이 매일 새로운 체험이 되어 즐거웠어요. 치안이 좋지 않아 밤에는 거의 나다니지 않았습니다. 또, 체증이 심하고, 시간에 루즈한 사람들이 보통이었죠. 때문에 좀처럼 약속한 일이 실현되기 어려운 상황이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아라카와 아프리카를 기획할 당시, 나이보리의 친구를 초대했을 당시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요. 소득이 낮은 불법 채류의 가능성이 있어 비자 취득에 아주 힘들었기 때문이죠. 구체적인 교류를 진행하는 가운데, 일본과 아프리카의 현실적인 차이를 느낄 수 밖에 없었어요. 아라카와 아프리카 프로젝트는 교류의 길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죠.

photo by Koji Shimamura

- 미술 실천과 사회적 실천

LEE : 좀 더 가까운 사회에서 예술 활동을 전개 한다는 것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YOSHINARI :
저는 원래 옷이 규정하는 사람 간의 관계성을 재조직하고 싶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다시 말하면 생활에 있는 모종의 거북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자기 변혁"이나 “관계의 방향"이 항상 활동의 주제였어요. 그것을 실험하기 위해서 실제로 사회에 개입하는 것이 가장 적합했던 것 같아요. 예술의 실천에 있어서 자신이 바뀌고, 타인과의 관계 맺는 방식에 새로운 전환점이 온다면 생활이 보다 윤택해질 수 있지 않을지 기대합니다.


LEE : 다양한 해외 전시도 전개하고 계신데요. < 서울 미디어 시티 비엔날레 >등 한국 미술의 종사자와 협업은 어땠나요?
YOSHINARI : 
첫 해외 전시회였습니다. 담당 큐레이터인 하세가와 유우코씨와  현지 학생들과 퍼포먼스 작업을 제작하였습니다. 작품을 통해서 세대와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큐레이터는 저의 작품 제작 프로세스를 일찍히 흥미롭게 봐주었던 것 같습니다.

LEE : 지난 3월 나라현립대학교의 학생들과 한국에 방문하셨습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YOSHINARI : 
나라현립대학은 미술 대학이 아니지만, 아트와 관계 없는 학생들과 어떻게 협동하여 배울 수 있는지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평소 좋아했던 최정화씨가 스튜디오에 초대해주셨어요. 타자와의 협동이나 함께 배워가는 것은 세대나 국가를 초월하는 체험이었죠.

LEE : 최정화작가와 나라(奈良)시가 함께 진행한 < FLOWER WELCOME >프로젝트를 기획하셨습니다. 어떻게 연이 닿으셨나요?
YOSHINARI :
사이타마 트리엔날레 2016에서 간접적인 인연을 맺게되었습니다.  그 후, 아내가 어시스턴트 큐레이터였던 < 아시아 문화 도시 2017 교토 >의 전람회에서 최정화씨의 작품을 소개받게 되었어요. 같은 생활을 주제로 작업을 전개하는 작가로서 공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최정화씨가 나라의 프로젝트에 몹시 흥미를 가져주셨어요. 처음 나라 현립 대학에서 전시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라시 관계자들에게 주목받으면서 저와 최정화씨의 협업으로 나라시 아트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싶다는 의뢰가 들어왔어요.

LEE : 초기 작업에서 현재 작업까지 작가의 작업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YOSHINARI : 
어떤 상황에 신체를 두고, 그것을 내부로부터 내폭implosion)하는 일을 중시해왔다. 인간은 옷을 입는 일로부터 도망칠 수 없기 때문에 작업의 발상이 되었다. 즉, 인간은 사회적으로밖에 살아갈 수 없지만, 그것을 철저하게 함으로써 내부로부터 변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커뮤니케이션을 되찾으려는 일관적 태도가 있다. 옷이라는 아주 개인적인 매체로 작업을 진행하였고, 실제로 일본의 미술 관계자가 거의 착수하지 않은 아프리카라는 장소와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스스로도 놀라고 있다. 또 사람과 사람이 서로 배우는 환경이라는 의미에서 교육이라는 활동에 아주 보람을 느끼고 있다. 표현의 형식에서도 공장이나 아트 프로젝트, 아트 매니지먼트, 패션 브랜드, 사회 디자인 교육 등 다양한 방법을 취해 왔다. 왠지 이런 분야의 사람으로 규정되게 되면 스스로 다른 분야와의 협업 방법을 찾아 왔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치나 경제 분야에서 할 수 없는 공동체를 만드는 힘을 미술은 가지고 있었다. 개인은 언제나 사회와 관계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분명하게 바라보는 것이 사회나 미술에 대한 표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LEE : 앞으로의 계획은?
YOSHINARI : 육아 활동에 전념할 수 있다. 가족과 생활을 예술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는 지금 뿐이다. 아직 구체적이지 않지만, 어떤 활동을 전개할지 기대하고 있다. 

LEE : 최정화작가와 나라(奈良)시가 함께 진행한 < FLOWER WELCOME >프로젝트를 기획하셨습니다. 어떻게 연이 닿으셨나요?
YOSHINARI :
사이타마 트리엔날레 2016에서 간접적인 인연을 맺게되었습니다.  그 후, 아내가 어시스턴트 큐레이터였던 < 아시아 문화 도시 2017 교토 >의 전람회에서 최정화씨의 작품을 소개받게 되었어요. 같은 생활을 주제로 작업을 전개하는 작가로서 공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최정화씨가 나라의 프로젝트에 몹시 흥미를 가져주셨어요. 처음 나라 현립 대학에서 전시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라시 관계자들에게 주목받으면서 저와 최정화씨의 협업으로 나라시 아트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싶다는 의뢰가 들어왔어요.

LEE : 일찍이 사회에 더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미술에 관심을 갖고 전개해오셨습니다. 현재 작업까지 작작업은 어떻게 변화해 오고 있나요?
YOSHINARI : 
어떤 상황에 신체를 두고, 그것을 내부로부터 내폭implosion)하는 일을 중시해왔습니다. 인간은 옷을 입는 일로부터 도망칠 수 없기 때문에 작업의 발상이 되었어요. 즉, 인간은 사회적으로밖에 살아갈 수 없지만, 그것을 철저하게 함으로써 내부로부터 변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있을지도 모르는 커뮤니케이션을 되찾으려는 일관적 태도가 있었습니다. 옷이라는 아주 개인적인 매체로 작업을 진행하였고, 실제로 일본의 미술 관계자가 거의 착수하지 않은 아프리카라는 장소와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스스로도 놀라고 있습니다. 또 사람과 사람이 서로 배우는 환경이라는 의미에서 교육이라는 활동에 아주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표현의 형식에서도 공장이나 아트 프로젝트, 아트 매니지먼트, 패션 브랜드, 사회 디자인 교육 등 다양한 방법을 취해 왔습니다. 이런 분야의 사람으로 규정되게 되면 스스로 다른 분야와의 협업 방법을 찾아 왔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치나 경제 분야에서 할 수 없는 공동체를 만드는 힘을 미술은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은 언제나 사회와 관계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분명하게 바라보는 것이 사회나 미술에 대한 표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LEE :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YOSHINARI : 육아 활동에 전념하려 합니다. 가족과 생활을 예술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는 지금 뿐입니다. 아직 구체적이지 않지만, 어떤 활동을 전개할지 기대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