加藤翼  Tsubasa Kato 

Tsubasa Kato, Abandon(Monument Valley), 2013
 (Photographing by Yukari Hirano, Courtesy of MUJIN-TO Production)


LEE : 직접 이야기 나누게 되어 기쁩니다. 먼저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TSUBASA : 유화를 전공한 후, 워싱턴 대학에서 건축 객원 연구원으로 재적했습니다. 입체, 영상, 퍼포먼스를 횡단하며 작품을 발표하고 있습니다만,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특징은 공동실천입니다. 로프를 잡아당겨 거대한 구조물을 넘어뜨리는 < Pull and Raise > 같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집합하는 우연성을 작업에 내재시킵니다. 공공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작품 가운데 한국과 일본의 국경 지역(섬)에 표지판을 세우는 < The do not understand each other >도 있습니다. 국경, 벽, 도로와 같은 사회 구조와 경계선의 난센스를 다루는 작업이었죠.

LEE : 구조물을 잡아당기는 작업을 보면서 참여자들이 굉장히 본능적인 공동의 목적을 남기는 모습이 흥미로웠습니다. 이런 작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TSUBASA : < Pull and Raise >는 심플한 발견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무언가를 잡아당기며 고군분투할 때, 주위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진 신체적인 본질이(펜이나 컵이 탁자에서 떨어질 때, 무의식중으로 손이 나가는) 순간적인 반응으로 '도와준다'는 선택을 한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Pull and Raise는 이 발견을 거대한 스케일로 검토해가는 작품입니다. 구조물이 커지면 그곳에 우연히 참석한 사람의 협력도 필요합니다. 실제로, 구조물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분위기를 먼발치에서 감지한 사람들이 점점 밧줄에 모이고는 합니다. 


LEE : 구조물이 쓰러지면서 기뻐하는 사람들은 뭐랄까 일시적인 공동체로까지 보입니다. 츠바사씨에게 공동체는 어떤 의미인가요?
TSUBASA : < Pull and Raise >의 상태를 “한때의 집합”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집합의 생성 요인은 (거대한 것을 움직인다는 일시적인) 목표와 (밧줄을 손에 쥔 신체적인) 반응, 무엇보다 (그 자리에 참석한) 우연입니다. 이 집합의 외부에 있는 사람 즉, 감상자로부터 보면, 거대한 것을 움직이는 하나의 사상에 결탁된 경향의(塊り) 집단으로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내실은 우연히 모인 사람들도 포함한 여러 주관이 뒤섞인 집합이죠. 저는 가족이나 친구, 미술계, 아시아인, 일본어권, 일본국, 종교 등의 공동체에 복층적으로 속하여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인, 아시아인, 아티스트이라는 이유로 아이덴티티를 보기 좋게 둘러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속한 공동체에서 안이하게 이데올로기를 요구하는 구성원이나 자신이 속하지 않은 공동체에 보기 좋은 라벨을 붙이는 외부자도 함께 실수하고 있지 않을까요. 공동체의 실태는 항상 아메바처럼 부정형하며 복잡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LEE : 2014년의 Tokyo Loop부터는 참여자의 성격이 조금 달라진 느낌인데요. 설명 부탁드립니다.
TSUBASA :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에 의한 쓰나미에 따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본을 타격했습니다. 그 후로 원발의 시비를 묻는 논의가 원전 문제에 그치지 않고, 일본이 안고 있는 사회 구조의 쟁점을 밝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차원에서 도쿄에 보이는 변화는 아직 뚜렷하지 않습니다. 해답이 보이지 않는 의논만이 궤도를 돌고 있는 도쿄. Tokyo Loop는 이런 문제를 풍자한 작업입니다. 이 트럭은 한 응원단장이 응원하는 (스포츠 대회에서 선수를 응원하는 그룹인 응원단은 일본의 독특한 스타일이 있으며 적어도 보수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음.)  영상을 촬영하며 도쿄의 순환 고속도로(도심순환선=C1)를 달립니다. 응원이 끝날 때, 트럭은 도로를 한 바퀴 돌고 영상은 다시 처음부터 루프 재생됩니다. 즉, 트럭과 남성은 영원히 도쿄를 주회하며 응원을 지속하고 있죠. 하지만, 그의 응원이 도쿄에 직접적인 변화를 미치지는 못합니다. 응원이 게임 플레이에 주는 영향은 어디까지나 애매한 것이죠.

LEE : 14년 이후부터는 더 구체적인 상황이나 문제를 지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를 들어 < The Raft of ___________ >처럼 말이죠.
TSUBASA : 3,279명(2014), 3,784명(2015), 5,143명(2016). 이 숫자는 지중해에 떠내려간 난민의 사망자 수입니다. 지금까지 리비아에서 유럽까지의 항로 도중, 구조 없이 무사도착하는 고무보트는 한 척도 없었습니다. 한 밀항업자는 유럽까지의 항해를 몇 시간 정도의 “강을 건너는 일”이라 알리고 있다 합니다. 이전에 인도네시아 마카사르 바다를 항해할 때, 예고 없는 폭풍우를 맞은 적이 있습니다. 시커먼 수면에 펼쳐진 파도의 너울림에 오싹한 감각, 어쩌면 배가 전복될지 모른다는 공포를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체험이 작은 일로 보일 정도로 지중해를 표류하는 난민의 가혹함은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 The Raft of ___________ >에서 “강을 건너는 일”이 어떤 것인가, 그 검증을 즉석의 뗏목으로 시도해보았습니다. 그리고 힘이 빠지는 장소에서 QR코드를 들어 보였습니다. QR코드는 장소의 위치를 나타내는 이른바 구난 신호입니다. 전시장의 관람자는 QR코드가 가리키는 장소에 이미 아무도 없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위치 정보는 매일 변동하며 표류는 계속되고 있을 것입니다. 직접 볼 수 없을 뿐, 멀리 바다에서 표류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LEE : 최근에는 처음으로 ‘인간’이 아닌, 동물이 등장하는 작업이 보이는데요. < Under Ground Orchestra >에서 등장하는 쥐는 어떤 동물인가요?
TSUBASA : 이 동물은 엄밀히 말하면 쥐가 아니라, 프레리 도그(설치류 리스과)입니다. 2013년에도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는 노스 다코타 주의 스탠딩 록 인디언 보호 구역(이하, SRIR)에서 촬영한 작업니다. 지난 프로젝트 당시, 이 촬영 장소는 초원이었습니다. 다시 돌아왔을 때, 이곳저곳 생겨난 작은 구멍과 함께 급변한 풍경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프레리 도그들은 언제 어디서 왔을까요? 13년도 프로젝트에서 3년 후, 2016년에 SRIR에서 하나의 투쟁이 있었습니다. SRIR를 가로지르는 석유 파이프 라인 건설을 추진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시위의 충돌이었죠. 송유관 추진 측은 $1.5억 이상의 세수 효과를, 시위 측은 환경 오염을 주장했습니다. 수 천명의 시위 참여자들과 천명 이상의 방위군이 SRIR의 풍경은 바꿔 놓았습니다. 누계 700명 이상의 구속자를 낸 뒤 결국 파이프라인은 건설되었습니다. 투쟁은 영상의 배경이 된 언덕 너머에서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이 몰리기 전, 그곳에 살고 있던 프레리 도그는 언덕을 넘어 이 퍼포먼스 무대로 대이동하였습니다. 당시 전국의 매스미디어가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대이동을 보도한 뉴스가 없었습니다. 이번 투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양쪽 진영의 인간에게 강제 철거 당한 프레리 도그일 것입니다. 지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보이지 않는 그들의 움직임이 인간에게 무언가 호소하듯 느껴졌습니다. 이 작업은 그 움직임을 소리로 변환하여 표현한 시도입니다.

LEE : 기존의 작업보다는 더 추상적인 느낌이 강해진 것 같아요.
TSUBASA : 그렇게 말해주신다면, 작가로서는 기쁜 일인 것 같아요. 제작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이 작품에서 발견해주셨네요. 비주얼, 움직임, 소리 3개의 요소를 의식하면서 시적인 작품을 발표하도록 힘써왔습니다. 이 작업이 가진 추상성은 적어도 ‘움직임’의 묘사가 적었던 것이 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드린 세 가지 요소를 전부 밸런스 좋게 만드는 것보다, 얇게 피는 편이 상상력을 환기하기 좋은 것 같습니다. 작품에서 발견하게 된 하나의 감각입니다.


LEE :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작업은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달라지고 있나요?
TSUBASA : 동일본 대지진 재해지의 프로젝트 이후, 작풍은 오늘날 사회 정세에 대한 풍자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4명의 백인남성이 서로 밧줄로 묶으면서 국가를 연주하는 < Woodstock 2017 >. 민다나오분쟁에서 피난 온 난민 무국적 커뮤니티와 구조물을 뒤집었던 < Break it Before it’s Broken >. 환태평양 지역의 아티스트들과 분산형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SNS로 대화하면서 태평양을 낀 삼국에서 동시에 투석한 < Can you Hear Me? >. 프로젝트의 사이트나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의 거리를 감상자에 측정시키는 일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거리에 잠재하는 경험자/감상자 즉 당사자/비당사자의 경계선으로의 끝을 흔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