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n Jae Yong

LEE :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CHUN : 뉴욕의 스쿨 오브 비주얼아트에서 파인아트를 전공했다. 2001년도에 한국 돌아와 쌈지라는 회사에서 아트마케팅을 중심으로 작가들과 함께 인테리어나 광고를 제작했다. 회사의 아이덴티티는 작가들과의 활동을 위주로 운영되었다. 한국에서는 개인적인 작업보다는 회사 일에 집중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회사와 작업을 어떻게 연결 지을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쌈지라는 회사가 잘못되면서, 쌈지 농부가 만들어졌다. 농사라는 게 참 어렵다 깨달으며 아티스트와 어떻게 풀 수 있을지 고민해오고 있다. 지금도 헤매는 중이다. 논밭갤러리를 운영하면서 전시도 만들고 있다. 최근 고민은 작가가 사회와 관계짓는 것이 전시보다는 외부의 것들이라는 점이다. 전시는 사회와의 연결에 있어서 구체적이지 않았다. 농사를 같이 지어본다는 것도 이벤트지만, 구체적으로는 설득력 있게 표현되지 않아 최근 고민하고 있다.

LEE : 초창기의 쌈지사운드 페스티벌은 어떤 계기로 기획하게 되었나?
CHUN : 쌈지 안에 쌈넷이라는 회사가 있었다. 쌈지페스티벌은 3회부터 16회까지 담당하여 기획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페스티벌이 많지 않았지만 현재는 워낙 잘 만들어진 페스티벌이 많다. 음악을 좋아한다. 아티스트나 뮤지션들과 함께 재미있게 놀고 싶어서 뮤직비디오나 커버앨범을 제작하며 기획하게 되었다.

LEE : 쌈지농부 활동의 계기와 최근 활동이 궁금하다.
CHUN : 쌈지농부 자체가 농사는 예술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있었다. 초창기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방법을 연구했다. 처음에는 전시를 기획하여 작가와 농부를 매칭시키는 방식으로 활동했다. 예를 들어, 도자기 작업을 하는 작가와 소금을 제조하는 농부가 있다고 한다면, 이 둘을 매칭하는 것이다. 농사꾼이 만드는 소금은 스토리가 굉장히 많은데, 결국 소금 하나로 표현된다. 작가 또한 다양한 스토리의 무언가가 결국 하나의 작품이라는 결과물로 표현된다. 이 둘을 서로 매칭을 시키면, 소금은 비주얼로, 작품을 더 다양한 스토리가 담길 것이라 생각했다.

LEE : 쌈지농부에서 직접 농사하여 작물을 재배했나?
CHUN : 초창기에는 전문가인 농부를 직원을 채용했다. 그리고 직원들과 직접 농사를 배우면서 작물을 재배했다. 쌈지농부 초창기에는 직원들 모두가 함께 농사를 지었다. 3년 차가 지나면서, 앞서 말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느끼며 4년차 부터는 짓지 않게 되었다.

LEE : 2008년 쌈지농부를 재개할 당시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CHUN : '농사는 예술이다'는 캐치프레이즈가 현재 미술계의 흥미로운 소재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에코프렌들리, 친환경, 오가믹같은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있었다. 처음 미술계에서 시도할 때는 주변의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슈가 3년이 지나며 시들어졌다. 따라서, 여러 내용도 시들어졌다. 미술계는 새로운 이슈나 담론들이 생성되면, 표현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너무 짧은 것 같다. 물론, 예술과 농사를 접목시킨다는 발상을 실천하기에 대한민국이 너무 바쁘다. 미술계라기보다는 대한민국의 분위기가 그렇지 않나. 호흡이 짧은게 아쉽다.

LEE : 논밭갤러리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CHUN : 논밭갤러리는 앞서 말한 작가-농사 매칭 프로그램의 결과물을 전시한 곳이다. 큰 욕심보다는 1년에 두 번 정도 기획해보는 취지가 있었다. 실제적으로 6번의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전시는 전시일뿐이고, 농부가 작가를 이해함의 벽이나 예술가가 농부를 이해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양쪽 모두 어떻게 보면 같은 크리에이터이며 신념을 가지고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다. 콜라보레이션이 무언가 획기적인 것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현실을 굉장히 어려웠다. 돈의 문제가 가장 컸다. 전시 자체가 그들에게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단기간의 만남보다는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고 장기적인 시간이 필요한데, 여러 상황이나 여건이 있으니 쉽지 않았다.

LEE : 갤러리와 함께 학교도 운영하였다. 논밭예술학교가 어떤 기관인지 궁금하다.
CHUN : 쌈지농부가 굴러갈 수 있게 하는 심장 같은 기구다. 나를 포함한 직원들은 농사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 또한, 환경에 대한 이슈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이런 것을 배우기 위해 만든 기관이다. 그래서 학교라는 이름이 붙었다. 작가나 농부, 셰프 등 다양한 사람을 초대하여 직원들과 함께 배우고 실천해보는 공간이었다. 지속 가능성을 위해, 여러 가지 농사 방법을 연구했는데, 실제적으로 연결되기는 힘들었다. 최근에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보다는 작가들과의 전시를 좀 더 치밀하게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 세일즈가 되어서, 서로의 이익이 될 수 있게 생각하고 있다. 자체 교육 같은 사업은 줄이는 중이다.

LEE : 농업은 자급자족을 실현할 수 있는 근본적인 수단이지 않나. 농사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CHUN : 파인아트를 전공하면서, 조각과 설치를 중심으로 작업해왔다. 손이 가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는 작업이다. 미술이라는 분야는 나에게 눈으로 보이는 것을 손으로 만드는 것이다. 농사는 굉장히 가까운 분야였다. 회사 안에서 농사를 예술처럼 지어보는 순간 농사는 이벤트같은 재미있는 것 내지는 퍼포먼스가 되었던 것 같다. 나 또한 막상 해봤을 때, 마음이 편해지더라. 사람들은 농사라는 것에 기본적인 감수성이 있는 것 같다. 체험객은 모두 재미있게 했던 것 같다. 다만 돈으로 이끌기에는 참 힘든 일이다. 업이 된다면, 막노동처럼 힘든 일이다.

LEE : 쌈지 농부의 추후 계획도 알고 싶다.
CHUN : 쌈지농부의 지속 가능성은 고민 중이다. 현재는 쌈지농부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최소화하고 있다. 다만, 쌈지 농부가 하는 일은 대기업이나 정부가 하기에 좋은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끈을 쥐고 있다가, 정부나 기업이 원하면 콘텐츠를 주고 싶다. 시간과 자본의 문제로 개인이 하기에는 힘든 것 같다. 잘 기획된다면 작가나 농부가 환경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LEE : 작가로서의 진행한 < 지켜봐야했던 죄책감 > 작업도 이야기해보고 싶다.
CHUN : 사회가 주는 메시지에 반응하면서 작업을 만들었던 것 같다. 세월호나 남대문 사건 같은 사회가 풀지 못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 지켜봐야 했던 죄책감 >은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운 전시다. 전시가 있던 전 년도에 세월호 사건이 있었다. 당시 사건을 개인으로서 받아들였을 때 어처구니가 없었다. 항의하거나 데모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음 속에는 불편함이 남아있었다. 이런 먹먹함이나 '나쁜 것’을 미술이란 문법으로 나누고 싶었다. 실제 더 자신감을 갖고 용기있게 표현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아있다. 미술은 상징성이 강하다 보니 현실 속의 메시지 전달이 힘들더라. 여타 작가처럼 직접적인 실천이 더 맞지 않았을까, 적극적인 방식이 맞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다.

LEE : 사회나 미술을 작가는 어떻게 다루며 고민하고 있나?
CHUN : 사회의 강박이나 국가폭력같은 것은 개인인 사회 구성원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러 투쟁의 과정에서 가능성이 모이고, 이것들이 조금씩 사회를 바꿔나가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미술의 역할로 힘든 것 같다. 오히려 영화나 광고의 메시지가 강할 때가 있다. 하지만, 영화나 광고는 자본의 영향이 크다 보니 약점처럼 돌아오는 부메랑 같다. 사회라는 것은 바꿀 수 없는 반복적인 스탠드로 가야 하는 것인가? 무엇이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할 때, 작가에게는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될 것이고, 설득력이 있어야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작가로서 한 개인의 치부를 찾아, 보여주었을 때, 얘깃거리가 나오고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시기획이나 동료 작가와 더 논의하며, 작가가 구체적으로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고민하고 싶다. 작가가 전시를 만드는 게 꼭 사회와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갤러리나 전시는 작품을 판매하고 보여줄 뿐, 담론을 만들어서 소화되기까지 펼치는데 무력한 것 같다. 모더니즘은 말할 것도 없고, 민중미술도 아쉬웠다. 하지만 미술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것들이 무언가를 했다고 주장한다. 나에게는 설득력이 전혀 없다. 일본의 하이레드센터가 전개한 외부의 기이한 퍼포먼스가 주변 사람들에게 환기시키는 분위기를 만든 사례였던 것 같다. 이런 활동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갤러리 밖에서 농사가 되었든, 이벤트가 되었든, 데모가 되었든, 외부에서 사회에 메시지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소비사회에서 미술도 소비자를 위해 심플해지고 소극적이며 세련되어 졌다. 이런 것들이 트렌드가 되어버리고, 관계 지으려는 행위 자체가 무언가 클리셰가 되어버린 것 같다.

LEE : 마지막으로 가까운 계획은
CHUN : 결국은 미술 때문에 광고도 했고 농사도 지었다. 때문에, 미술의 가능성을 믿고 있다. 미술로 할 수 있는 건 굉장히 다양한데, 많은 사람들은 미술로 ‘예술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라는 타이틀로 예술이 생성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술가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하는 책임감이 있다. 텍스트가 되었던, 철학이 되었던, 행동이 되었던 앞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