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준 Chang Hyun Jun


LEE :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업을 시작한 계기부터 차근차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CHANG : 한국에서는 예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니까, 뭐 하나 선택할 때 여러 가지 고려하게 되잖아요. 처음 조각이나 설치 작업을 하던 중에 매체 자체가 나에게 맞는가? 지속적인 깊이를 낼 수 있을까?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작품으로 관객을 만날 때, 부정적인 오해가 있었고, 그 불충분을 해소하고 싶었어요. 작업하는 일 자체. 어떤 매체를 다루는 그 상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생각이나 행동의 과정들이 가치가 있단 걸 깨달은 것 같아요. 그래서 생각의 흐름을 조금 더 유연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어요. 결정적인 매체가 아니라 매체를 다루지 않고 무언가 ‘하고 있는’ 상태를 보여주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죠. 퍼포먼스는 미술사에 오랫동안 회자 되어왔고, 없던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용기를 내 시작하게 되었어요. 내가 ‘움직임’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몸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먼저 해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조각이나 회화가 과정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은 오산이었죠. 당시에는 절박했기 때문에, 자신의 판을 엎는 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LEE : 매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영향인지, 안무 연출로 학교를 다시 입학하게 되었어요?
CHANG : 몸을 더 연구할 수 있는 무용의 방법론이 몸을 직접적으로 사유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당시 그 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몸에 대한 생각은 보류하고, 몸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몸을 어떻게 사용해서, 어떻게 보여줄지에 대한 고민이 중점이었죠. 당시 무용계의 가치관과 마찰하며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이때부터 전반적인 예술의 실천과 우리를 둘러싼 예술 환경, 예술을 유통시키는 기준에 둘러싸인 문제를 직시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마주할 때 껄끄러운 다양한 문제의 인과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곧 작업의 주제가 되었어요.


- 장소를 연출하고, 감각적 체험을 유도하다.

LEE :작업을 시작할 당시, 몸보다 상황을 만드는데 몰입하신 것 같습니다.
CHANG: 장소성에 관심을 가진 시기가 있었어요. 철판을 작은 인형으로 잘라, 공간의 면적을 채우는 작업을 했어요. 계획을 세우고 인형을 반복적으로 생산하는 상황에서 애초의 의도와는 다른 행위를 하는 몸이 느껴졌어요. 비슷한 액션을 취하고 있는 몸의 상태, 일정한 흐름만이 있을 때는 잡생각이 들잖아요?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나는 왜 이렇게 많은 걸 만들고 있지? 처음에는 인형 개수들을 세다, 어느 순간 그 숫자도 무의미해졌어요. 실제로 필요한 량보다 훨씬 많은 량을 만들었죠. 과정에 몰입하게 되며, 행위에는 의도나 목적이 사라지며 느껴지는 단순한 그 감각들이 오히려 크게 다가온다는 것을 인식했죠. 하지만, 작품의 과정은 관객에게 크게 호응 받지 못하잖아요? 점점 관객에게 공감 받지 못할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 그 한계를 마주하기 시작했어요.


LEE : 과정에서 느껴지는 몸의 감각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게 일반적인 작품 감상의 프로세스가 아니잖아요? 실천을 위한 어떤 시도가 있었죠?
CHANG : 당시에는 그 감각에 대한 인식을 외면해야만 했어요. 20세기 중 후반에 펼쳐진 독일 개념 미술에 가까운 교육을 받았어요. 작업은 계획에 철저한 개념을 세우고, 확고한 상태에서 일관성이 있어야 했죠. 하지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에 일관성은 결여되잖아요. 이런 과정을 당시에 보여주는 시도는 쉽지 않았어요. 학교나 주류 미술과는 달랐던 것이죠.


LEE : 초반 작업의 장소성에 대한 관심은 이제 몸 자체로 옮겨 왔어요. 공간의 상황이 주는 몸의 감각보다 행위에 흥미가 생긴 계기가 있나요?
CHANG : 건축가인 아버지가 설계한 집이 제가 태어날 때, 완공되었어요. 그곳에서 25년 살았죠. 정착민으로서 붙박이 인생을 살며, 아버지가 계획한 공간 안에서 여러 건축적 환경에 마주했어요.  장소가 주는 다양한 감각을 속속들이 느끼기 시작한 것 같아요. 장소성은 3차원 공간이 주는 공감각에 대한 관심이었어요. 작은 오브제부터, 신체를 뛰어넘는 큰 구조물까지, 사람은 구조물의 크기에 따라, 상황에 따라, 공감각적인 대처가 필요해지죠. 초기 작업은 화이트 큐브에 어떤 인위적 첨가를 통해 환경을 바꾸며 다른 체험을 하게 해준다는 개념이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이미 무수한 공간이나 상황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었죠. 일상에서 끊임없는 환경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에요.

눈앞에 없는 낯섦, 나는 협소한 창문으로 출입하라 ©인사미술공간

LEE : 관심이 완전히 몸으로 옮겨 오며, 본격적인 신체의 탐구가 시작됩니다. 당시 국은미 안무가를 만나면서 어떤 경험을 하셨나요? .
CHANG : 장소성에 대한 관심의 한계를 느끼며 국은미 선생님은 저의 불충분을 인지하게 해주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장소적 레퍼런스를 떠나, 몸의 즉흥을 관객에게 관람시킨다는 감이 잡히지 않았죠. 계획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를 경험할 수 있었어요. 국은미 안무가는 단지 몸을 들으라 해주셨어요. 몸과 생각은 연결되어 있지만, 우리는 많은 부분, 생각이 몸을 주도적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몸의 한계는 분명 있어요. 하지만, 한계보다 더 큰 제한을 머리가 규정하죠. 뭐랄까, 이성이나 머리를 반박하거나, 폄하는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축소되어있는 몸의 가능성을 원상 복구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에요.


LEE: 예술의 대한 고민이 완전히 전환되면서, 어떤 작업을 전개하였나요?
CHANG : 먼저, 특정 사건이 있을 때, 사람들의 행동을 수집하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면, 무언가 가르칠 때 몸은 어떤 행위를 하는가? 스스로 움직임을 만들어낼 때는 어떤가? 재난에 어떻게 움직이는가? 또, 건축을 할 때는 어떤가? 어떤 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행동을 수집하고 그것을 모방하며, 실제 이상의 상상력을 유발시키려 했어요. 국은미 안무가는 몸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체험하라 했어요. 몸을 들으면 몸의 상상을 들을 수 있어요. 그 상상을 머리에 가져가서, 또 무한한 가능성이 발생할 수 있는데, 거기에 내러티브도 있는 것이죠.

- 장소, 몸, 그리고 시간

LEE : 양은혜 기획자와 함께 <  Turn leap: 극장을 측정하는 작가들  >에서 신작을 발표하였어요. 저도 현장에서 관람했는데요. 몸의 관심사가 다시 장소성으로 돌아간 인상을 받았어요.
CHANG : 사실, 2017년에 극장에 대한 질문을 한다는 게 진부했어요. 2012년에 첨예하게 질문해온 주제였어요. 물론, 무대라는 것, 본다는 것에 대한 답이 나온바 아니지만, 그 질문을 지속하는데 의미를 상실했던 것 같아요. 다른 일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몸이나 행동, 극장에 대한 질문을 요청 받았을 때, 이상하게 끌고 가고 싶은 의지가 있었어요. 어떤 새로운 질문이 있을까? 기대가 있었던 것 같아요. 두산 아트랩부터 자본적 시간의 질의가 마음 속에 있었는데, 극장을 그 자본적 시간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LEE : 공간을 시간으로 측정한다는 건 어떤 일이죠?
CHANG : 자본적 시간은 신체를 비롯한 모든 인격을 교환하는 시간이잖아요? 사람을 교환하는 일이지만, 저에게는 몸의 시간이었죠. 라이프니치가 주창한 시간의 개념에 흥미를 가져 왔어요. 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사건과 사건의 중간에 있는 것이죠. 사건과 사건이라는건 공존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발생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에요. 이 개념은 공간적이며, 신체적으로 다루는 방법론도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 다시 관객과 나, 나와 내 신체가 인지되었죠. 예를 들면 신체와 신체 사이, 생각과 생각 사이, 생각과 현실 사이다. 현실에는 행동도 있고 몸도 있죠. 생각과 현실은 간극이 있고, 감각도, 인지 자체에도 시간이 있어요. 신선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충분히 있었죠. 외부로부터 누군가의 상상력을 안으로 받아 들여, 다시 상상하는 프로세스가 제 작업이니까요.


LEE : <  Turn Leap  >공연에서는 신체를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다루신 것 같아요. 하나는 ‘발언’이며 하나는 ‘움직임’이었죠. 장현준 작가님에게 말과 시간은 어떤 관계이며, 움직임과 시간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요?
CHANG : 시간에 대해서는 아직 질문해가는 단계고, 알아가는 입장이에요. 주장을 하기에는 미진해요. 일반적인 얘기를 해보자면, 세상이 진동이라는 설이 있고, 정보라는 설이 있잖아요? 세상이 정보라면 지금 내 손가락도, 말도, 빛도 정보죠. 100만광년 떨어져 있는 별이 죽으면, 100만년 후에나 우리에게 보이겠죠. 말을 한다는 것 또한 , 비슷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생각해요. 어딘가에서 발생했고, 어딘가로 도달하기까지의 정보죠. 몸과 시간도 역시 거리감으로 나타낼 수 있어요. 공연이라는 건 관객의 사건과 나의 사건 사이에만 있죠. 그것이 시간이고, 사이에만 존재하는 사건이라면 여백일 수 있어요. 그래서 공연 자체가 비어있는 것이라 말할 수도 있고요.



LEE : 언급하신 두산 아트랩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네요. 씽씽밴드의 이희문씨와 오재우 작가와 협업하셨잖아요. 흥미로운 조합이라 생각해요.

CHANG : 우연히 모이게 되었어요. 두 분은 사전에 프로덕션을 하고 있었고, 이희문씨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죠. 듀오로 프로젝트를 하던 중에 저를 소개해주었고, 셋이서 뭔가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큰 목표보다는 공통된 주제를 찾다 역시 예술에 대한 얘기가 되었습니다. 예술가로서 계속해서 들러붙는 돈의 문제에 집중해보았지만, 실마리를 찾기 힘들었어요. 두산 아트랩 작업은 함께 자본론을 읽고 발췌된 내용을 토대로 현 단계를 검토해본 시도였어요.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돈과 사람이 관련된 일로 가해자가 되기도 하죠. 예술창작지원금의 작가피가 없어, 횡령이나 돈을 가지고 있는 권한으로 옳지 못한 생각을 한 경험은 모두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LEE : 예술가로서의 창작 현실에 대한 고민은 Monthly Performance의 결성까지 이어집니다.  
CHANG : 월례움직임(Monthly Performance)은 양수진, 최은진 안무가와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함께 공연하며 이러저러한 시간을 보낸 동료들이에요. 당시 여러 경험을 거쳐 작가적 침체기가 찾아 왔거나, 일상의 큰 변화가 있었던 예민한 시기였어요. 지원금 제도에 지쳐서 큰 돈을 받으려 노력하지 않을 때, 작업의 가능 여부를 고민하기 시작하며, 삶까지 직결되었어요. 모두 침체를 겪고 있을 때, 최은진 안무가 굉장히 호혜적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경험하여 귀국하였죠. 작가에게는 어떤 무한한 신뢰나 관심, 모든지 가능하다는 믿음이 필요하단 것을 느끼고,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을 설득했던 것 같아요. 원례움직임은 작가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지 기회를 동려하고 확인하자는 취지가 있어요. 그래서 완성되지 않는 작품도 발표할 수 있죠. Monthly Performance는 모든 게 최소한이에요. 우리도 일상이 있고, 주된 일들이 있잖아요?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이죠.  


LEE : 앞으로 계획을 말해주세요.
CHANG : 지금은 작업보다 경험을 더 쌓고 싶은 상황이에요. 지금까지 한국 밖을 나가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외국 생활이나 여러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